1983년 4월 20일, 봄 기운을 덮어버린 찬 바람이 불던 그 날 뜨거운 울분을 가지고 입대했던 한 군인이 얼마 전 영예로운 전역을 했다. 그 군인은 필자에게 작은 아버지이다. 그의 전역을 축하하며 지리했던 지난 세월을 돌아보는 가족 식사 자리에는 그의 아버지, 어머니부터 얼마전 결혼한 그의 딸과 손자에 이르기까지 4대가 참여했다.

그 자리에 참석한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 형, 동생은 그의 군생활에 대해 입을 모아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의 입대는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한 선택이었고 녹록치 않았으나 지금의 우리 모습을 지키게 해준 것에 감사”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으나 지금은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버린 그의 막냇 동생은 형에게 처음으로 면회를 갔었던 때를 추억하며 눈물지었다. 용댕이라는 산골짜기 동네에서 읍내로 이사 나와 자장면집 셋방을 얻어살던 때 그리고 가난이 그들의 발목을 붙잡았던 그 때, 머리가 희끗해져버린 형제는 각자의 시선으로 그 시절을 기억하고 있었다.

내 생애에 걸쳐 우리 집안 아버지 세대의 모습을 비추어보자면 지금의 내 나이 남짓 했을 때의 그들에게 가난이 얼마나 큰 고민이었을런지 감히 예상하기 어렵다. 욕심 많고 감성적인 우리 집안의 남자들에게 녹록치 않은 세상을 더욱 높은 장벽처럼 보이게 했었던 건 이 족쇄였으리라.

내가 경험한 학문의 전당에서의 배움의 즐거움이 나의 아버지 세대의 누군가는 평생에 걸쳐 한번쯤은 서보기를 간절히 소망했던 것이었고, 유달리 공격적인 목적 지향형인 내 모습의 뒷켠에는 굴레를 벗기 위해 처절했던 그들의 모습이 반영되어있는지도 모른다.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는 것을 넘어 번영의 길로 나아가고 있는 나와 나의 형제들 그리고 얼마 전 태어난 나의 조카들을 위해 오늘도 기도한다.